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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우리나라 미제 사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일 텐데요. 당시 개구리를 잡으러 갔던 다섯 명의 아이들이 실종돼서 35만여 명의 인원을 대동해 대대적인 수색을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해 갖가지 소문들이 난무했었는데요. 2011년 아이들이 실종된 지 11년 만에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주으러 간 동네 주민으로부터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4명의 아이들은 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1명의 아이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유골 분석 결과 어떤 아이는 두개골에 25곳의 흉기 흔적이 있었습니다. 올해 33주년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아직까지 범인은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제 사건인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사건의 개요
아이들이 실종되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1991년 3월 26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30년 만에 지방 선거를 하는 날이라 임시 공휴일이었습니다. 아침 8시 지금은 대구 성서 초등학교로 불리는 당시 성서 국민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우철원군, 조호연군, 김영규군, 박찬인군, 김종식군, 김태룡군 등 총 6명이 조호연군의 집 근처에 놀고 있었습니다. 이 조호연군네 집에 한 청년이 세를 들고 살고 있었는데, 그 날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가서 놀라고 소리쳤고, 그 후로 와룡산으로 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당시 청년은 자신 때문에 애들이 죽었다며 죄책감의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 해내기도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뒤 6명의 아이들이 분유 깡통과 막대기를 챙겨 들고 와룡산으로 가던 도중 김태룡 군은 위험하니까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도 생각이 나고, 밥도 먹을 겸 혼자서 집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5명이 산으로 향했던 겁니다.또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은 조호연군의 형이었던 조무연군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와룡산 입구에서 아이들을 만났고, 도룡뇽 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그때 듣고 헤어져 돌아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9시쯤에 와룡산 기슭 마을에 살면서 시내에 나가 파출부 일을 하던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봤다고 했고, 당시 투표를 마치고, 학교 쪽으로 내려오다가 와룡산 쪽으로 올라가는 5명의 아이들과 지나쳤습니다. 아이들은 2시간 내로 갔다 올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12시에는 같은 반이었던 학생 2명이 와룡산 입구에서 아이들을 봤다고 했고, 와룡산 기슭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14시 무렵에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고 있는 걸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실종신고를 하다
아마도 그 와룡산이라는 곳이 아이들이 자주 놀러 가던 산 인지라 그날 4학년에 다니던 한 학생이 아이들은 보지 못했으나, 형들과 함께 도롱뇽 알을 찾으러 와룡산 계곡에 갔는데, 형들과 떨어져 혼자 와룡산 중턱에 있는 묘지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10초 간격으로 날카롭고 다급한 비명 소리가 두 차례 정도 들렸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가 와룡산에 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중에 야단을 쳐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점심이 지나도 아이들이 오지 앉자 18시부터 와룡산 일대를 뒤졌지만, 아이들은 찾지 못했고, 결국 19시 50분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죠.범인은 누구였을까
범행 도구에 대한 추측
11년 후 2002년 9월 26일 도토리를 줍던 한 동네 주민이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했고,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뼈밖에 남아있지 않는 상태였는데,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부검 결과 둔기로 맞거나 흉기에 찔려 타살이 된 것으로 추정이 내려졌습니다.
두개골에 나타난 여러 찍힌 흔적들은 경찰에서도 여러 가지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것으로 실험해봤으나, 결국 비슷한 흔적을 찾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만, 아이들 유골이 발견되고 나서 인터넷에 글이 하나 게시되었는데, 그건 범행도구가 아무래도 버니어 캘리퍼스 같다는 이야기였죠
버니어 캘리퍼스는 산업현장에 쓰이는 일종의 자와 같은 도구인데, PD수첩에서 해당 버니어 캘리퍼스로 실험을 해본 결과 아이들의 두개골에 있는 흔적과 유사한 흔적이 나는 걸 알아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프로파일링으로 몇 가지를 제시했는데요.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첫 번째는 오랫동안 와룡산에서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공구를 다루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세 번째는 1991년 사건 이후 이곳을 떠났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제 사건인 만큼 다양한 추측들과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추측 1,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공분을 샀던 게 경찰이 유골을 발견했을 때 현장 보존조차 하지 않았고, 과학 수사대도 부르지 않은 채 곡괭이를 이용해 땅을 파헤쳐 현장을 훼손시켰습니다. 무엇보다 현장 감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파헤친 유골을 보고,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상식적으로 타살은 아니라며 조난 당해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요.
더 웃긴 건 아직까지도 저체온증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하는 경찰이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에 주장에 의하면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비가 와서 한기를 견뎌내려고 한 곳에 몰려있었으나, 결국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라는 건데요. 그리고 퇴적물은 비가 오고 산에서 떨어진 잔해물일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나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두개골에 난 흔적들은 산에서 떨어지는 돌멩이라던가 짐승들의 공격이라던가 하는 그런 것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한 두 명이 참여해서 분석한 게 아니었고, 저체온증이려면 현장의 장소뿐 만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분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낙하하는 돌에 의해 두개골이 손상되었다면 찍힌 자국이 아니라 아예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추측 2, 선생님에 의한 타살 가능성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한 커뮤니티에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관련되어 의혹을 제기한 글입니다.
선생님일 거란 심증이 너무 강하다. 지도에 학교랑 매장 장소 거리를 봐라 딱 아이들 묻고, 그다음 날 출근하기 좋을 정도로 가깝다. 와룡산 지리를 잘 안다는 것도 당연히 그 학교에 근무하며 종종 산에 다니고 했었으면 알 이야기 아니냐 그 당시엔 주민이면서 선생님이었다면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모르는 성인이 어린이 5명을 한 번에 제압하거나 통솔할 수 없다는 상식은 반대로 말하면, 그 초등학생들이 모두 아는 성인인 선생님 정도면 흉기나 위협적인 말로 만으로도 충분히 5명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소리가 된다.
당시 1990년대에는 선생님의 공권력이 강하던 시절이어서 실제로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비교적 잘 듣던 시기였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실제로 와룡산과 발견된 유골 근처에 초등학교가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나 추측성인 데다가 당시 접점이 되었던 선생님은 없었습니다.추측 3, 도살견에 의한 물림 사고
이번에도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관련 게시글입니다.
처음 죽은 애는 도살견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진 자료 보시면 날카로운 뭔가에 두개골 여러 곳이 찍혀 있습니다. 산속에 도살견을 키우던 주인이 개집을 수리한다고 개를 꺼내 주위에 묶어 놨었는데, 그때 무리에서 이탈한 애를 도살견이 물어버린 겁니다. 그 개를 풀어놓은 게 장애인 아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들의 처벌이 두려워서 아버지가 살해 후 구미로 야반도주를 한 것이죠.
남편은 그 후로 죽고, 아내는 마지막에 요양원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여자가 요양원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지금은 죽었을 겁니다. 노령이라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당시 와룡산 근처에는 도살견을 키우던 다섯 개의 견사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두개골의 흔적을 분석한 결과 짐승에 의한 것보다는 인위적인 도구에 의한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이후 이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2003년 관련된 수사 본부는 해체되었고, 2005년 11월 28일에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소시효 연장 및 폐지를 촉구했으나, 2006년 3월 26일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2015년에 내사마저 종결되었습니다.
하나 2019년에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가 잡히면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이 사건도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화성 연쇄살인사건에서는 범인을 특정해낼 결정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개구리 소년 사건은 뚜렷한 물증이 남아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범인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2021년 3월 26일 대구시에서는 개구리 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를 세웠고, 2022년 4월 22일에는 김영규 군의 아버지가 지병이었던 뇌경색으로 향년 7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셨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세상의 모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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